홍성담의 그림창고



                                                                                                                                      흙 - 2/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15

[흙 - 2]

백악산 아래 건물들은
땅 속 방들끼리 작은 통로로 이어져 있다

'바리'는 사다리를 내려와 잠자리를 펴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오래전에 피살되어
저 해골더미 속에 누워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뉴스를 듣기 위해서 소니 라디오를 켰다

나는 일이 그르쳐 엉뚱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명이 다한 군용 지프의 엔진 소리가 너무 두렵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한 몸 숨길 곳이 없다

그해 여름 두 달을 삼촌은 큰항아리 속에 숨어 지냈다
백악산 등성이에 세워진 감시탑은 날이 갈수록 더 높이 올라갔다
카메라는 날마다 하나씩 더 늘어났다

매일 밤, 야경꾼이 골목길을 지나간 후에
할머니는 식은 밥 한 덩이를 담은 두레박을 땅 속 깊이 내려 보냈다
항아리 속 삼촌은 벌써 죽어버렸던 거야

그는 「영원」도 「순간」이라는 ‘바리’의 말을 기억했다

멋쟁이 그이가 살았던 33년 짧은 세월은 「영원」이다
그이가 죽임을 당한 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의 긴 세월은 「순간」이다
「영원」과 「순간」이라는 말은 길고 짧은 것을 두고 가름하는 것이 아니었다

골목길 바깥에서 밤마다 총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졌다
누군가가 죽는 대신에 누군가는 살 수 있었다

나는 두 거인 A와 B가 싸우는 모습을 빨간 우체통 뒤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들이 발을 굴릴 때 마다 땅이 흔들렸다
그날은 B가 A의 배위에 올라타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목이 뚝 부러지는 소리가 마치 대포소리 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B는 숨이 넘어간 A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고 배를 갈라 생간을 씹었다
그리고 A의 머리통을 높이 들어올려  몇 번이나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더니
검은 이빨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귀와 코를 물어뜯어 뱉어내고 위아래입술을 꽉 깨물고 힘껏 잡아당겼다
양쪽 볼이 북 찢어지면서 목줄기 아래까지 벗겨졌다
이마에 이빨을 박아 두피를 벗겨냈다
머리를 뒤집어 놓고 뒤통수를 주먹으로 두어 번 내리쳐서
눈알을 빼냈다
그리고 B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더니 가로수 은행나무 가지에
A의 허연 해골을 걸어놓고 한참 바라보다가 어둠속으로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이런 난리가 났어도 백악산 아래 도시는 고요했다  
나는 날이 밝기 전에 A의 시신을 치워야 한다며
리어카와 가마니조각을 찾았으나 마땅한 것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어디선가 오와 열을 맞추어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호각소리가 짧게 들리고 다시 총소리가 울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한 몸 숨길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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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30 [흙 - 2]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15 17:11
조회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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