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달 - 2/ 45 x 30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13

[달 - 2]

나는
도마 위에 길게 누워있는 달빛을
날선 칼로 채 썰었다

채 썰 때는 쌍둥이표 칼 보다는
섬진강하구 화계장의 대장간 칼이 훨씬 더 편했다

달빛을 저밀 때 마다 칼날이 아름다운 소리로 울고
도마가 박자를 맞추었다

달빛 채 조각들이 좌로 우로 서로 방향을 달리 할 때 마다
욕망의 밀도와 질감이 다른 모양으로 변했다

그 욕망의 예민한 조각들이 '바리'의 몸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그녀의 머리통을 옥죄었다
어느 손 하나가 그녀의 몸속에 들어가 헤집었다
어느 머리 두 개가 그녀의 살 속에 쳐 박아 넣고 긴 혀를 날름거렸다

그들의 힘이 강 할수록 '바리'의 몸은 하얗게 빛났다
그녀가 더욱 단단하게 몸을 닫아걸면서 말했다

'그들을 모두 받아내기에는 내 몸이 너무 작다'

나는 채 썰던 칼을 내려놓았다
그녀가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난폭한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몸을 열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빛 쪼가리가 끊임없이 달려들어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하얀 몸이 점점 옅어지더니 이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바리'의 목소리만 가늘게 남았다

'나는 달이 내려주신 녹대살을 건너고 있다
그런데 신발을 벗어놓고 황급히 와버렸구나
벌써 아홉 개의 산과 다섯 개의 바다를 지나고 있다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엔
단정하게 묶여진 하얀 옷고름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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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28 [달 - 2]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13 11:59
조회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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