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인연의 끈/ 45 x 30 cm/ 종이에 먹과 수채/ 2012.8.11

[인연의 끈]

인연의 끈에 묶여있는 검은 옷 여인을
달빛이 홀려대고 있었다
상상력은 밤이 되어야 비로소 날개를 활짝 편다

그가 검은 옷 여인에게 날아가려고
막무가내로 몸을 공중에 띄우려 했다
'바리'가 엄지발가락으로 그의 바지 끝동을 꾸욱 밟았다

'가지 마라
상상력은 네 몸 안에 있다
저 검은 옷 여인이 너에게 줄 상상력은 눈꼽만큼도 없다'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질투심을 읽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저 검은 옷 여인이 나에게 보여주는 것은
슬픔이나 기쁨이나 그런 감정이 아니다
저 여인의 몸을 투과한 달빛이 이미 내 몸 안에 내려앉았으니
이제 나는 어떤 인연도 두렵지 않다'

나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바리'의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두 번이나 찔러 주었다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 가거라'

이번엔 내 손이 그의 소매자락을 강하게 잡았다
그가 내 손을 홱 뿌리치면서
검은 옷 여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눈부신 달빛이 그를 강하게 빨아 들였다
그의 몸이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한 줄기의 달빛으로 변했다

그가 여인의 몸 속 깊이 빨려 들어가는지
그녀의 눈꺼풀이 잠깐 씰룩거리면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달 뒤편 밤하늘 끝에서
쇠로 만든 코끼리떼와 프라스틱으로 만든 기린과 나무로 만든 소떼들과
종이로 만든 개떼들과 밀가루로 만든 말떼들이
쇠사슬과 울긋불긋한 철릭을 목과 등에 두르고
뽀얀 먼지를 날리며 어디론가 진격하고 있었다

오늘 따라 '바리'의 눈이 더욱 외롭다
그녀의 눈 속에 또 다른 달 하나가 둥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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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 - 27 [인연의 끈]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8-11 12:05
조회수: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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