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내내 감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서운했던 차에
결국 봄의 문턱에서 감기를 허락하고 말았다.
어둡고 습한 감기는 마치 캄캄하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1주일 동안 앓다가 이제 감기로 부터 탈출하고 있다.
마치 끝없이 긴 터널을 지나 새끼손톱모양의 하얀 빛이 보이는 터널의 끝을 마주보고 있는 황홀한 기분이다.
이 황홀한 기분을 위해 1주일 동안 쿨럭쿨럭대면서 죽도록 몸살감기를 앓을만도 하다.
오늘 다시 '야스쿠니의 迷妄' 작업을 위해
캔버스 천을 잘라서 벽에 압핀으로 누르고 하얀 밑칠을 시작한다.
하얀 밑칠.
작업을 위해 캔버스에 하얀 밑칠을 할 때 마다 마음이 설레인다.
이번 작업에서는 어떤 새로운 상황을 만날까.
이 작업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작업에 대해 애초에 세웠던 계획과 완성된 그림 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될까.
이런 설레임들 때문에 기분이 좋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런 기분을 좀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한나절이면 끝낼 수 있는 밑칠을
이틀,삼일 동안 그저 무아지경 속에서 하얀 밑칠을 반복적으로 한다.
하얀 밑칠.
봄이 온다.
한반도 남쪽에 3월 21일쯤에 개나리가 핀다.
한반도 배꼽에 해당하는 안산엔 4월 10일에 만개한다.
남쪽끝에서 안산까지 직선거리로 약 200 Km , 개나리 꽃이 북쪽으로 하루에 약 10 Km 를 걸어 올라온다.
1일 10 Km 걸음이니 마치 어린아이가 천천히 걷는 속도쯤 되겠다.
개나리 꽃이 안산에 도착할 즈음에 저 그림도 완성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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