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16
[木魚' 66 - 연평바다의 딸]
청둥이가 길게 내민 목을 두리번 거리다가 그제야 바닥에 납작하게 버티어 선 꽃게를 보았다.
‘엥? 요게, 요런 것이 내 사타구니를 물고 늘어졌단 말이야?
나 청둥이를 물어뜯은 것이 바로 납짝이 너냐? 요 버르장머리 없는 노옴!’
득달같이 달려온 청둥이를 보고 꽃게가 다시 양쪽 큰 집게발을 한껏 벌려서 딱딱 마주치며
금방이라도 튀어 올라 물어뜯을 것처럼 나머지 발의 마디마디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리고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누가 마고인지 마귀할멈인지 내 알 바 없지만 나는 서해 연평바다의 딸 꽃게, 나의 이름은 꽃지다.
남의 버르장머리를 탓하기 전에 먼저 너의 버르장머리 없는 것을 둘러 봐라!’
‘헤엥! 요것이 요런 납짝이가 감히 내 사타구니를 더듬어 물어뜯다니? 오늘 너의 구멍 난 등깍지를
내 노란 부리로 쪼아서 아예 다 부숴버리고 말테야’
‘흥! 내 등깍지를 부순다구? 그러기 전에 이번엔 내 집게발이 너의 노란 주둥이를 뿌리 채 싹둑 잘라버리고 말 것이야’
‘엥! 내 주둥이를 짤라 버린다구? 내 이 멋진 노란 부리를 싹둑?’
말이 커지면 가시가 돋고 그 말을 듣는 이는 가시에 가슴을 다치게 된다. 내가 손을 뻗어 그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꽃지는 한껏 벌린 집게발을 마주치며 딱딱 소리를 몇 번 더 내고 청둥이는 여전히 분이 가라앉지 않아 씩씩거렸다.
목어가 말했다.
‘갈 길이 바쁘다. 청둥이 네가 참아야 겠다. 꽃지 저 애도 착하고 귀한 아이다. 오늘 해지기 전에 꼭 물속 도시의 문을 찾아야 한다.
청둥이는 오늘 우리들 원정대의 대장격이니 그 맡은 책임을 다 해야 할 것이야. 그만들 분을 삭히고 서로 사과해라’
꽃지가 다시 두 눈을 조심스럽게 쏙 내밀며 끔적거리더니 들어 올렸던 집게발을 내리고 먼저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애초에 네가 내 집 위에 앉았을 때 내가 일찍 나서서 말렸어야 했는데.....미안해’
청둥이는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여전히 딴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의 대장이라는 목어의 말에
기분이 좋아져 좀 누그러지는 듯 했다.
말을 마친 꽃지가 이미 청둥이의 엉덩이로 뭉개져버린 자신의 집이 있는 옴팡한 곳으로 조신하게 옆걸음질 치며 걸어갔다.
그렇게 걸어가는 다리의 딱딱한 껍질 속 마디마디 마다 그녀의 말 못할 비애가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짓뭉개진 자신의 집을 들여다보고 있는 꽃지의 등에 난 험한 구멍이 더 크고 어둡게 보였다.
구멍이 난 딱딱한 깍지를 무겁게 등에 인 그녀가 왠지 더 슬프게 보였다.
내가 꽃지를 불렀다.
‘꽃지야! 우리는 며칠 전에 저 곳 물속도시 한 가운데로 떨어진 별똥별을 보러 간다. 그 별똥별에 이 세상의 미래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혼자 그렇게 있지 말고 우리랑 함께 가자!’
‘바로 삼사일 전에 여기 시화바다 물속으로 떨어진 별똥별이 내 머리위를 지나서 저 물속도시 한가운데로 내리는 것을 보았어.
나도 그 별을 꼭 보고 싶지만 등에 난 구멍 때문에 깊은 물속엔 들어갈 수가 없어’
목어가 나서며 말했다.
‘어차피 너도 등의 상처가 더 썩어 들어가기 전에 그 등깍지에 난 구멍을 하루라도 빨리 치료해야 할 것이다.
오늘 오후 일정은 물속도시의 좌측 벽에서 문을 찾아 나설 계획이어서 외지섬을 지나게 된다.
그 외지섬에 진득말풀이 있다는데 그 풀로 너의 등에 난 구멍을 막을 수 있다. 함께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곳 바닥이 모두 썩었는데 그런 풀이 살아있을까?
설마 그런 풀이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큰구멍이 난 내 등깍지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까?’
‘이곳 시화바다에서 그나마 아직 외지섬 쪽이 가장 덜 썩고 있다. 그리고 약한 독성을 갖고 있는 풀이라서
지금까지 살아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꽃지가 잠시 망설였다. 청둥이도 그런 꽃지가 불쌍하게 보였는지 어려운 입을 열었다.
‘너의 집을 모두 짓뭉갠 내가 잘못했다. 사과할 께. 대신에 함께 가면 목어 아저씨가 말하는 그 풀을 내가 찾아 줄 것이다.
함께 가자! 나도 별똥별을 구경한 다음엔 저기 서해 먼바다 하얀이빨 백아섬으로 잃어버린 내 왼쪽 날개를 찾으러 간다.
내 날개를 찾게 되면 내가 아까 뭉개버린 너의 집을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튼튼하게 다시 지어 주겠다’
꽃지가 작은 보석알처럼 까만 두 눈을 몇 번 더 꿈적이더니 결심을 한 듯 조신한 옆걸음으로 우리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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