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2.02
['木魚' 114 - 소중한 것]
우리들이 우도 바다 밑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거센 하얀 파도들이 물속까지
밀고 들어와 커다란 너울을 만들었다.
빗줄기도 상당히 굵어졌다. 바닷물 바깥은 강한 폭풍우가 가득 덮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잠깐 은신할 수 있는 곳을 겨우 찾아서 점점 거세지는 너울을 피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간조 때가 된다. 비좁지만 이곳에서 꼼짝 말고
간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파도가 점점 더 심해질거야‘
청둥이와 내가 걱정스런 눈으로 목어의 몸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아까 우지끈 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나무 몸이 괜찮을까?’
‘지난번에 금간 곳이 또 말썽을 부리나봐. 그렇지만 견딜만 해.
워낙 오래된 몸이라서 항상 이렇지. 우린 시화바다 물속도시에서도
더 험한 경험을 했지. 그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청둥이의 등에서 내린 꽃지가 근처의 바위 틈새를 기어 다니면서
쓸만한 것들을 열심히 찾았다. 청둥이도 뒤를 따라다니며 꽃지의 일을 도왔다.
바위 틈새에 박힌 폐그물 조각들을 한 무더기 주어 와서 바위 밑에 부려놓고
요리조리 돌아보며 가늠을 하던 꽃지가 뒤돌아 앉아서 작업을 시작했다.
서로 엉킨 폐그물의 나일론 끈을 풀고 다듬으며 뭔가를 부지런히 만들고 있었다.
청둥이가 바로 옆에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꽃지가 하는 일을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와! 왠 손길이 이렇게 빨라?’
꽃지가 양쪽 집게발과 다른 발들을 재빠르고 맵시 있게 움직여
폐그물로 작은 망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물 조각에서 풀려나온 주황색 나일론 끈 수십 가닥을
서로 매끈하게 이어서 길쭉한 자갈에 총총 감아 제법 큰 꾸러미가 되었다.
청둥이가 물었다.
‘이걸 뭣에 사용하게?’
‘바다 밑에 들어가서 깃털말풀을 캐면 이 망태에 소중하게 담아야지’
‘괙괙! 바닷속의 깃털들이 아주 호사하는구먼!’
꽃지가 일을 하다말고 갑자기 까만 눈을 들어 청둥이를 바라보았다.
청둥이를 바라보는 꽃지의 눈이 초저녁 별처럼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청둥이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기 전에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잠자코 쉬고 있던 목어가 몸을 일으키며 출발할 준비를 했다.
‘벌써 간조 때가 된 것 같다. 지금부터 밀물이 시작될 때까지 아주 짧은 시간동안
이 거센 파도가 잠시 숨을 죽인다. 그러나 바다 밑 해류는 서로 뒤섞이면서 난잡해지니
모두들 조심해야 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들물이 밀려오면 강한 바람도 함께
몰려 올거야. 특히 꽃지를 등에 업은 청둥이는 더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날개섬 우도 동편을 돌아서 바다 밑 어두운 계곡을 향해 헤어갔다.
모자반 해중림도 난잡한 해류에 이리저리 헝클어지면서 심하게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두어 걸음 사이에서 해류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기도 하고
우도쪽 가까운 바위 아래서는 커다란 물매미가 굉음을 내면서 돌기도 했다.
비바람 때문에 하늘이 어두워지니 물속은 마치 캄캄한 밤이 된 것 같았다.
‘괙괙! 용왕님도 무심하시지. 하필이면 꼭 이 중요한 때에 비바람을 보내시나.
내가 진즉에 뇌물을 써야 했는데 엥이!‘
'흐흐. 뇌물은 인간세상에서만 통한다'
내 말에 청둥이가 낄낄대고 웃다가 커다란 너울에 몸을 출렁거리면서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헹! 서해 용왕이 내 깃털을 내주기 싫은가봐. 괙괙괙'
목어가 웃으면서 청둥이의 말을 받았다.
‘그래. 소중한 것은 그냥 얻는 법이 없단다.
우리에게 귀중한 것이면 이곳 바다에게도 소중한 것이란다.
간조 때가 확실하지만 이곳 수심은 별로 변한 것이 없구나.
모두들 이곳에서 기다려라! 일단 내가 다시 시도를 해 보겠다.
아까 경험도 있으니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 거야‘
숨을 크게 몇 번 들이쉬고 나서 목어가 천천히 아래쪽을 향해 내려갔다.
목어의 육중한 몸이 해중림 모자반 줄기들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우리는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목어가 모자반 뿌리가 박힌 바닥에 닿자 컴컴한 계곡 쪽을 향해 기다시피 접근을 했다.
목어의 몸이 바닥에서 떨어질 뻔하다가 심하게 흔들렸다.
강한 수압이 목어의 몸을 누르기 시작했다. 바로 눈앞에 반짝이는 깃털이 보였지만
도저히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얼핏 중심을 잃었다. 다시 목어의 몸 어디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우지끈 들리며 순식간에 육중한 몸이 위로 튕겨져 나가듯이
거꾸로 솟았다가 다른 방향에서 밀려오는 해류에 휩쓸렸다.
목어가 해류에 뒤집혀 떠밀려 가면서 균형을 잡아 보려고 턱밑 지느러미를
양쪽으로 넓게 벌렸다. 이때 역으로 강하게 흐르던 해류가 물매미를 만들면서
목어의 왼쪽 지느러미를 때렸다. 지난번에 너덜거리던 것을 겨우 못과 나일론 끈으로
보수를 해 놓았던 지느러미였다. 그 지느러미가 물매미에 맞아 뜯겨져 뱅뱅 돌면서
위로 솟았다. 목어는 손쓸 틈 없이 해류에 휩쓸리며 몇 번이고 곤두박질을 했다.
청둥이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나서 급하게 몸을 던졌다.
목어만 바라보고 일직선으로 헤어가서 목어의 왼쪽 턱 밑에 몸을 밀착시키고
왼쪽 날개를 넓게 펴서 떨어져나간 지느러미를 대신했다.
꽃지가 집게발로 목어의 턱을 물고 다른 발로 청둥이의 등을 껴안아 목어의 턱밑에
청둥이의 몸이 밀착되게 도왔다.
목어는 청둥이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몸의 균형을 잡고 이쪽으로 힘들게 헤어왔다.
내가 떨어져나간 그의 지느러미를 찾으려고 위쪽을 향해 헤어가려 하자
목어는 큰소리로 나를 말렸다.
‘안돼! 이미 그 지느러미 조각은 파도에 쓸려서 자취를 감추었을거야.
염려 말라구. 지금 청둥이가 그 지느러미 노릇을 훌륭하게 하고 있으니...‘
가까이 다가온 목어의 몸을 보니 턱 밑에서 몸통 쪽으로 내 손바닥이 들어갈 정도로
크게 금이 가 있었다. 지난번에 박아두었던 쇠못 두어개가 몸통의 틈이 벌어지면서
삐죽히 기어 나온 것이 보였다.
목어와 청둥이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정신을 차리는 사이에
꽃지가 우도 바다 밑에서 준비했던 꾸러미에서 나일론 끈을 풀어
끝을 모자반 줄기 꼭대기에 묶었다.
그리고 작은 망태와 꾸러미를 감은 길쭉한 자갈을 물고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우리들이 말릴 틈도 없이 꾸러미 끈이 재빠르게 풀어졌다.
길쭉한 자갈을 추로 삼아 아래쪽으로 사선을 그으면서
모자반 해중림이 끝나는 곳을 지나 컴컴한 바다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에
정확하게 내려앉았다.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이
컴컴한 바닥에 내려앉은 꽃지의 모습을 숨죽이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꽃지가 여섯 개의 발로 바닥을 꽉 움켜쥐면서 천천히 계곡 입구 급경사 쪽으로 접근했다.
바다 밑은 몹시 어두웠다. 꽃지의 등깍지 상처 구멍을 막아놓았던 빨강색 프라스틱 조각만
선명하게 보일뿐 꽃지의 몸은 바다 밑의 어둠에 흡수되어 버렸다.
꽃지가 계곡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까만 눈을 들어서 우리 쪽을 한번 바라보았다.
청둥이가 큰소리로 뭐라고 외쳤다. 그러나 꽃지에겐 전혀 들리지 않았다.
꽃지는 우리 쪽과 아스라이 길게 이어진 나일론 끈에 묶인 자갈 추를 끌고
어두컴컴한 계곡 아래로 천천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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